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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OM

Contemporaneity of Taste-Rococo Art, 2021.

동시대 취향은 어떻게 형성될까
귀족계급에게만 허용되던 로코코 미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각문화는 우리의 취향을 반영하며, 미술시장은 당시 미술 소비의 주역을 이루던 사람들의 취향의 결과이다. 반면, 하나의 예술 사조는 역사적으로 모든 취향을 포함하지 못하고, 예술가, 예술애호가, 미술사가, 이론가, 비평가로 이루어진 미술계의 아카데미를 거쳐 지속할 수 있다. 결국, 취향은 당대를 지배하는 미술 양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주된 근거로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18세기 서양미술사에서 풍미하던 로코코 양식은 앞선 바로크 양식의 퇴행으로 해석되어 예술 사조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로코코 양식이 가진 독특한 장식적 요소는 왜곡된 연구 하에 경시되었지만, 특유의 장식성 때문에 여성들의 의복이나 장신구, 장식미술로서 전통적인 예술 매체인 회화를 넘어, 가구, 실내 및 건축물의 장식에도 발견되었다.
바로크의 고전주의와 아카데미즘의 기준을 빌려 로코코 미술을 평가하도록 하였는데, 그것보다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배경을 중점에 두고 로코코 미술을 살펴봐야 로코코의 역사성을 수용할 수 있다. 로코코 시대가 시작되었던 18세기는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이 끝나고 루이 15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궁정예술에서 벗어나 귀족과 부르주아지 안에서 예술이 향유되었던 때이다. 절대 군주의 법칙이 유연해짐과 동시에 시민들의 개인의식이 고조되고 이성에 대한 낙관적인 신뢰가 팽배하였고, 엄격한 형식과 규칙에서 탈피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까지 유지되어온 고전주의 전통과 미학, 고전주의적 질서가 세워놓은 규율을 해체시켰다. 그리고 귀족과 부르주아지가 예술애호가로서 등장하며 현재에 대한 향락을 추구하였다.
로코코 양식이 하나의 예술 사조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귀족부인들의 개인 살롱문화이다. 살롱(salon)은 아카데미에서 개최하는 살롱전과 구분되는, 귀족 부인들이 개별적으로 열었던 사교모임을 가리킨다. 귀족부인들이 구심점이 되었던 살롱에서는 지적 유희에 대한 욕구, 품위와 교양에 대한 갈망이 표출되는 현장이었다. 이러한 살롱의 초기 주요한 목적은 살롱을 열기 시작하는 여성들의 자기결정적인 교육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으며, 계몽주의 철학에 기반한 당시 살롱 여성은 명석하며 자기교육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현대에 들어 온라인 미디어가 사람들의 취미를 공유하는 공론장의 기능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살롱은 특정 계급에 해당되는 모임이었으며, 살롱을 열었던 주최자는 자신의 권력과 자본을 과시하기 위해서 화려한 로코코 장식을 살롱 내부 디자인에 채택하였다. 오늘날 SNS 미디어가 이미지와 텍스트를 기반으로 문턱을 없애고 확장하는 가상 공간이라면, 로코코 시대의 살롱은 건물의 구조를 갖춘 폐쇄적인 체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은 귀족과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향유하던 예술이었기에 자본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지배구조를 더욱 견고히 하고, 계급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데 기여하는 예술은 일부만 소통 가능한 사치품이었다.
이전의 회화 중심의 예술성과 달리, 실내 장식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로코코 양식은 일상생활에 의욕을 북돋기 위함을 목적으로 시각적 가치를 넘어 촉각성까지 자극시킨다. 유선형의 곡선과 유기적인 형태의 특징을 갖춘 로코코 양식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17세기 프랑스 건축과 장식을 살펴보면 된다. 베르사유의 굴뚝과 노트르담 성당의 리모델링이 로코코의 진화과정을 보여주고,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은 그 당시 지배하고 있는 군주정치의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다. 회화와 조각을 벗어나 건축과 실내장식에서도 로코코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계급으로의 예술 향유 문화의 확산이 시작됨을 가늠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계층과 신분에 따라 소비하는 로코코의 양식적 특징이 달랐다는 점에서 근대와 현대 건축물에 로코코 양식이 반영된 흔적을 좀 더 세부적으로 서술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등장한 아르누보의 경우, 로코코 양식의 미학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아르누보의 탄생을 로코코의 부활로 바라보는 견해가 다수 있다. 당시 디자이너들은 로코코 미술을 개별적인 창작품의 차원에서 차용하고 전용하며, 로코코 양식을 디자인의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도록 하였다.
온라인 미디어가 오늘날 사람들의 취미와 예술 향유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면, 과거 18세기 로코코 양식은 프랑스의 사회정치적 변화에 따라 궁정예술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창작품으로 보급될 수 있었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고전주의의 철학과 사상을 토대로 전개되던 미술이 로코코 시대에 들어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고 외부인과 사교를 하는데 있어 미술이 작용하였다는 점을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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